바루토 가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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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루토 가이토는 에스토니아 출신의 전직 스모 선수로, 1984년생이다. 2004년 프로 스모 선수로 데뷔하여 '바루토'라는 시코나를 사용했으며, 2010년 1월 오제키로 승격하여 2012년 1월 마쿠우치 우승을 차지했다. 잦은 부상으로 인해 2013년 주료로 강등된 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하여 라이진 파이팅 페더레이션에서 활동했으며, 배우 및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2018년 에스토니아 중도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 2019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2023년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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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루토 가이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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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카이도 회벨손 |
에스토니아어 표기 | Kaido Höövelson |
일본어 표기 | 把瑠都 凱斗 |
별칭 | 카이도, 에스토니아의 괴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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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정보 | |
출생일 | 1984년 11월 5일 |
출생지 |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래네비루 주 바이케-마르야 |
신장 | 199cm |
체중 | 183kg |
헤야 (스모 훈련장) | 미호가세키 헤야 → 오노에 헤야 |
최고 등급 | 오제키 (2010년 5월) |
전적 | 431승 213패 102휴 |
데뷔 | 2004년 5월 |
은퇴일 | 2013년 9월 |
優勝 (유쇼, 토너먼트 우승) | 마쿠우치 (최고 디비전) 1회 주료 (두 번째 디비전) 3회 마쿠시타 (세 번째 디비전) 1회 조니다는 (네 번째 디비전) 1회 조노쿠치 (다섯 번째 디비전) 1회 |
수상 | 간투쇼 (투지상) 5회 슈쿤쇼 (뛰어난 성적상) 1회 기노쇼 (기술상) 1회 |
금성 (킨보시) | 해당 없음 |
특기 | 왼쪽 샅바 잡기, 들어올리기, 오른손 오버핸드 던지기, 밀어내기 |
기타 활동 | |
취미 | 코인 수집 낚시 영화 및 음악 감상 컴퓨터 |
정치 경력 | |
소속 정당 | 에스토니아 중앙당 |
2. 생애 초반과 스모 입문
카이도 회벨손은 에스토니아 래네비루주 배이케마리아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현재의 라에크베레구에 위치한 로후 마을 근처에서 성장했다.[132] 그의 가족은 가축 농장을 소유했고, 어린 시절부터 힘든 육체 노동에 익숙해졌다.[153] 16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여, 생계를 위해 나이트클럽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했다.[135] 10대 시절에는 농구를 했고, 에스토니아 전국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136]
어린 시절 유도 코치였던 리호 라니크마를 통해 아마추어 스모를 접하게 되었고, 가고시마현 스모 협회 관계자인 구라조노 가즈오의 권유로 프로 스포츠에 입문했다.[136] 외국인 선수 입단 제한으로 인해 입단 가능한 스모 방은 미호가세키베야 뿐이었다.[137] 2004년 5월, 발트해의 일본어 이름에서 따온 '바루토'라는 시코나를 받고 프로 스모 선수로 데뷔했다.[138]
2. 1. 스모 선수 시절
바루토는 2004년 5월에 스모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조노구치와 조니단에서 연속 우승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2005년 7월에는 막하 6위에서 5승 2패의 성적을 기록하며 주료로 승진했다.[51] 스모 시작 8개 대회 만에 주료로 승진한 것은 고니시키와 함께 역대 3위(당시)의 기록이다.[44] 2006년에는 마쿠우치로 승격하여 첫 대회에서 11승 4패를 기록하며 감투상을 수상했다.[140]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007년 1월에는 왼쪽 무릎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되어 3월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고 주료로 강등되기도 했다.[140] 하지만 2007년 5월 주료 선수권에서 14승 1패로 우승하며 7월에 마쿠우치로 복귀했다.[140] 2008년에는 고무스비로 승진했고, 2009년에는 세키와케로 승진하여 4개 대회 연속으로 자신의 순위를 유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141]
다음은 바루토의 스모 선수 시절 주요 기록을 정리한 표이다.
연도 | 대회 | 순위 | 성적 | 비고 |
---|---|---|---|---|
2004년 | 5월 | 첫 출전 | ||
2004년 | 7월 | 조노구치 | 우승 | |
2004년 | 9월 | 조니단 | 우승 | |
2005년 | 9월 | 주료 | 12승 3패 | 우승 차점 |
2005년 | 11월 | 주료 | 충수염으로 휴장 | |
2006년 | 1월 | 막하 | 6승 1패 | 우승 |
2006년 | 3월 | 주료 | 15전 전승 | 우승 |
2006년 | 5월 | 마쿠우치 | 11승 4패 | 감투상 수상 |
2007년 | 1월 | 마쿠우치 | 2승 2패 11휴 | 왼쪽 무릎 부상으로 도중 휴장 |
2007년 | 3월 | 부상 회복 지연으로 전휴 | ||
2007년 | 5월 | 주료 | 14승 1패 | 우승 |
2007년 | 7월 | 마쿠우치 | 왼쪽 무릎 부상으로 도중 휴장 | |
2007년 | 9월 | 주료 | 13승 2패 | 우승 |
2007년 | 11월 | 마쿠우치 | 11승 4패 | 감투상 수상 |
2008년 | 3월 | 마쿠우치 | 12승 3패 | 감투상 수상 |
2008년 | 9월 | 고무스비 | 8승 7패 | 첫 삼역 승진 |
2008년 | 11월 | 세키와케 | 9승 6패 | |
2009년 | 9월 | 고무스비 | 12승 3패 | 감투상 수상 |
2. 1. 1. 오제키 승격
2010년 1월, 바루토는 요코즈나 하쿠호 쇼를 19번의 도전 끝에 처음으로 꺾고 12승 3패의 성적을 기록, 첫 수훈상을 수상했다.[44][55] 3개 대회에서 33승을 거두었으나 오제키 승진에는 실패했다. 일본 스모 협회의 도모즈나 오야카타는 3월 대회에서 바루토가 최소 13승을 거두고 유쇼 경쟁에 참여해야 오제키로 승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142]바루토는 아란 하쿠토라와의 훈련 중 얻은 왼쪽 엄지손가락 부상에도 불구하고, 3월 대회에서 14승 1패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11일째에 하쿠호에게 패했지만, 마지막 날까지 하쿠호와 우승 경쟁을 벌였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투혼상과 기능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오제키 승진이 확정되었다.[133][44][57] 3월 31일, 일본 스모 협회는 바루토의 오제키 승진을 공식 발표했다. 바루토는 기자회견에서 "명랑하고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오제키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139]
2. 1. 2. 오제키 시절과 은퇴
바루토는 2012년 9월 아키 바쇼에서 오른쪽 엄지 발가락 부상으로 4일째에 기권하면서 '가도반', 즉 오제키 강등 위기에 놓였다.[17] 11월 규슈 바쇼에서 오제키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 8승이 필요했지만, 허벅지 근육 부상으로 3일째에 다시 기권하여 세키와케로 강등되었다.[18] 2013년 1월 하쓰 바쇼에서 오제키 복귀를 위해 10승이 필요했으나, 13일째에 6패를 기록하며 복귀에 실패했다.[19] 그는 다시 오제키로 승진하기 위해 마쿠우치에서 3개 대회 연속 32~33승을 거둬야 했다.[20] 2013년 여름 대회를 부상으로 불참하면서 2013년 9월 주료로 강등되었고, 9월 11일에 은퇴를 선언했다.[4]2012년 1월 하쓰 바쇼에서 바루토는 첫날부터 14연승(2011년 11월 규슈 바쇼 13일째부터 17연승)을 기록했고, 13일째 하쿠호가 고토오슈에게 패하며 3패가 된 시점에서 본인 첫 마쿠우치 최고 우승이 결정되었다. 천추락 마지막 대결에서 하쿠호에게 패하며 전승 우승은 놓쳤지만, 14승 1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2012년 3월 3월 바쇼는 본인 첫 쓰나토리(요코즈나 승진 도전) 장소였지만, 10승 5패로 실패했다.
3. 스모 이후의 행적
바루토는 스모 은퇴 이후 휴가 숙박, 소 사육, 차량 수리 및 유지 보수, 음료 판매, 관광 등 여러 사업에 참여했다.[155] 2015년에는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하여 라이진 파이팅 페더레이션에 합류, 4경기에서 3승 1패를 기록했다.[156][158] 2017년에는 일본방송협회(NHK)에서 방영된 타가메 겐고로의 만화 《내 형제의 남편》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159]
아마추어 스모 대회에도 참가하여 2018년 에스토니아 국내 선수권 대회 무제한급에서 우승했으며, 2019년 4월 탈린에서 열린 유럽 스모 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계획도 세웠다.[160]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인식 등 여러 자선 단체에도 참여하고 있다.[158]
3. 1. 종합격투기 선수 활동
바루토는 2015년 10월에 종합격투기 선수가 되어 라이진 파이팅 페더레이션에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56] 그는 기자 회견에서 자신이 25kg을 감량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강한 파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156] 2015년 12월 31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네덜란드의 종합격투기 선수 피터 아츠와의 경기에서 승리했다.[157]2016년 9월 25일에는 일본의 45세 노장 종합격투기 선수 후지타 가즈유키에게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157] 바루토는 4번의 경기에서 3승 1패를 기록했는데, 유일한 패배는 미르코 필리포비치에게 당한 것이었다.[27] 그는 "종합격투기의 세계에서 스모의 명성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다.[158]
3. 2. 사업가 및 배우 활동
바루토는 스모계에서 은퇴한 이후 에스토니아에서 휴가 숙박, 소 사육, 차량 수리 및 유지 보수, 음료 판매, 관광 등 여러 사업에 참여했다.[155] 2016년부터는 오피스 키타노 소속 연예인 및 배우로도 활동했다.[84]2017년 12월, 일본방송협회(NHK)는 타가메 겐고로의 만화 《내 형제의 남편》을 원작으로 한 3부작 드라마를 방영한다고 발표했다. 이 드라마는 게이 쌍둥이 형제 료지의 죽음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야이치와 그의 어린 딸 카나가 료지의 캐나다인 남편 마이크 플래너건을 만나면서 겪는 삶의 변화를 다룬다. 야이치 역에는 배우 사토 류타가, 마이크 플래너건 역에는 바루토 가이토가 각각 캐스팅되었다. 이 드라마는 2018년 3월 NHK BS 프리미엄에서 첫 방송되었다.[159]
3. 3. 정치 경력
회벨손은 2018년 9월 7일에 에스토니아 중도당에 입당했고 2019년 에스토니아 총선에 출마했다.[161] 그는 하리우주-라플라주 선거구에서 642표를 얻어,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던 블라디미르 아르히포브 후보가 의석을 거절하면서 리기코구 의원에 당선되었다. 회벨손은 국회의원으로서 에스토니아와 일본 사이의 경제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162][163] 2023년 선거에서는 다른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34]4. 사생활
바루토는 2009년 2월에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의 러시아 여성 옐레나 트레구보바와 결혼했으며, 이들은 일본에서 4년 전에 만났다.[164][35] 2017년 1월에 아들을 얻었다.[165][36]
2012년에는 에스토니아 정부로부터 백성훈장 3등급을 받았다.[166][167][38][39]
바루토는 에스토니아어,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일본어에 능통하다.[37] 일본에서 스모 선수로 활동하던 동안에는 주화수집, 파친코에도 흥미를 가졌다.[137]
5. 수상 및 기타 기록
바루토 가이토[40]의 종합격투기 전적은 다음과 같다.
종합격투기 전적 | ||||
---|---|---|---|---|
승패 | 상대 | 경기 결과 | 대회명 | 개최 연월일 |
× | 미르코 크로캅 | 1R 0:49 KO (바디에 왼 무릎 킥) | RIZIN FIGHTING WORLD GRAND-PRIX 2016 무차별급 토너먼트 FINAL ROUND 【무차별급 토너먼트 준결승】 | 2016년 12월 31일 |
○ | 고사카 츠요시 | 5분 2R 종료 판정 3-0 | RIZIN FIGHTING WORLD GRAND-PRIX 2016 무차별급 토너먼트 2nd ROUND 【무차별급 토너먼트 2회전】 | 2016년 12월 29일 |
○ | 후지타 카즈유키 | 5분 2R 종료 판정 3-0 | RIZIN FIGHTING WORLD GRAND-PRIX 2016 무차별급 토너먼트 개막전 【무차별급 토너먼트 1회전】 | 2016년 9월 25일 |
○ | 피터 아츠 | 3분 3R 종료 판정 3-0 | RIZIN FIGHTING WORLD GRAND-PRIX 2015 사이타마 3DAYS | 2015년 12월 31일 |
5. 1. 스모 수상 기록
연도 | 대회 | 성적 | 비고 |
---|---|---|---|
2004년 | 7월 | 7-0 | 조노구치 우승 |
2004년 | 9월 | 7-0 | 조니단 우승 |
2006년 | 1월 | 6-1 | 마쿠시타 우승 |
2006년 | 3월 | 15-0 | 주료 우승 |
2007년 | 5월 | 14-1 | 주료 우승 |
2007년 | 9월 | 13-2 | 주료 우승 |
2010년 | 1월 | 12-3 | 수훈상 수상 |
2006년 | 5월 | 11-4 | 감투상 수상 |
2007년 | 11월 | 11-4 | 감투상 수상 |
2008년 | 3월 | 12-3 | 감투상 수상 |
2009년 | 9월 | 12-3 | 감투상 수상 |
2010년 | 3월 | 14-1 | 감투상, 기능상 수상 |
2012년 | 1월 | 14-1 | 마쿠우치 우승 |
[40]
바루토는 거구의 강력함을 활용한 호쾌한 스모가 매력적이었다.[99] 왼손을 잡는 자세에서의 요리, 던지기, 매달리기를 잘했으며, 스모계에서도 "괴력"이라고 평가받는 강한 악력의 소유자였다.[99] 특히 마와시를 잡았을 때의 안정감은 특기할 만했다. 토요노시마는 바루토의 힘에 대해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순수한 힘"이라고 평가했다.[100]
코노에 친방(전 요코즈나 치요노후지)는 바루토의 스모에 대해 "스모의 개념이 바뀐다"라고까지 언급했다.[44] 2012년 1월 바루토는 첫 우승을 달성했는데, 이때 코토쇼기쿠를 상대로 어깨 너머로 잡은 上手(우와테)로 상대를 들어 올리는 백성을 선보였다.
하지만 무릎 부상 이후에는 민첩함이 사라졌고, 생명선이었던 어깨 너머의 上手를 잡을 수 없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고심 끝에 당기는 기술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자멸하는 경우가 많아져 번호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오제키 승진을 결정한 2010년 3월 장소에서는 모로테즈키와 쓰파리 같은 찌르기 기술이 평가되어 기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101][102] 그러나 오제키 시절 인터뷰에서 "얼마 전까지 던지기를 하는 방법을 몰랐다"라고 말하는 등, 기술적인 면에서는 과제를 남긴 채 은퇴했다.
잦은 부상의 원인으로는 어깨 너머의 上手에 의존하는 스모 스타일이 지적되기도 했다. 높은 위치에서 上手를 잡으면 무릎이 펴져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키타노우미 이사장은 2012년 11월, 바루토에게 "제대로 허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냥 서서 스모를 하고 있다. 하반신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103][44]
각계 관계자와 스포츠 라이터들은 바루토의 부상이 연습 부족에 기인한다고 지적하며, "자업자득", "제대로 하반신을 단련했으면 요코즈나가 되었을 텐데"라는 의견을 내놓았다.[104][105] 바루토 본인도 은퇴 회견에서 연습 부족을 후회하며, 최고위에 오르지 못한 이유를 "모두 내 탓"이라고 자책했다.[106]
5. 2. 종합격투기 전적
【무차별급 토너먼트 준결승】【무차별급 토너먼트 2회전】
【무차별급 토너먼트 1회전】